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한국동화문학선집’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100명의 동화작가와 시공을 초월해 명작으로 살아남을 그들의 대표작 선집이다.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아동문학연구센터 공동 기획으로 7인의 기획위원이 작가를 선정했다. 작가가 직접 자신의 대표작을 고르고 자기소개를 썼다. 평론가의 수준 높은 작품 해설이 수록됐다. 깊은 시선으로 그려진 작가 초상화가 곁들여졌다. 삽화를 없애고 텍스트만 제시, 전 연령층이 즐기는 동심의 문학이라는 동화의 본질을 추구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편저자가 작품을 선정하고 작가 소개와 해설을 집필했으며,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다.
일반 독자에게 동화작가로 잘 알려진 정진채가 일찍부터 시인이자 소설가로 문단에서 일정한 자기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그의 동화 작품에는 시 장르에서 각별하게 요구되는 언어적 자의식과 소설 양식이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서사 구성 능력이 분명하게 감지되는 까닭이다. 이 점은 금번 선집을 통해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작품 열세 편이 수록된 이 책을 관통하는 미학적 특성은 무엇보다도 언어에 대한 작가의 남다른 감각과 속도감 있는 서사의 전개 방식이다. 특히 이번에 선별된 작품들이 1970년대부터 2000년대에 이르는 시간적 편차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고른 수준의 작품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시와 소설, 동화 장르를 두루 섭렵한 정진채의 문학적 공력을 보여 주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정진채의 동화는 왜곡된 세상을 적시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본원성에 대한 절대적 신뢰와 역동적인 삶의 이치를 풀어 가는 데 바쳐진다. <무화과 이야기>, <몸빛>을 비롯해서 인간의 부질없는 욕망과 헛된 욕심에 대한 경계의 내용을 담고 있는 <관유와 돌각시>, <하얀 꽃사슴>, <내가 만난 초록사람>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작품들은 공히 인간사의 제반 문제를 작가 특유의 동화적 상상력에 의지해서 풀어내고 있는데, 이를 우리는 동심으로 빚어낸 인간학이라고 새롭게 명명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정진채 동화 세계의 또 다른 특성은 인간과 자연의 공존 추구, 더 나아가 생태적 사유의 적극적 개진에서 찾아진다. 이러한 주제 유형은 주로 1990년대를 전후해 발표한 작품들에서 발견된다. 예를 들면 “인간들의 가슴에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샘솟게” 해 달라는 당부의 목소리를 담은 <애란과의 약속>, 생태 오염의 심각성을 작가의 말마따나 “환상과 현실의 아름다운 만남”으로 엮어 낸 <오리 여자>, 마찬가지로 환상적 상상력을 내장하고 “인간이나 동물이나 식물에 이르기까지 목숨은 소중한 것”임을 재차 강조한 <흑띠>, 야생의 본성을 잃은 새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출한 <새를 사랑하는 사람> 등이다.
그의 동화는 자연 앞에서 겸손하다. 우리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연 대상물을 소재로 한 그의 작품들은 언제나 자연에서 배우고 자연과 함께 호흡한다. 인간의 자연에 대한 배려란 곧, 인간 자신에 대한 배려임을 그의 동화는 이미 알고 있는 까닭이다.
200자평
정진채는 동화작가이면서 시인이자 소설가다. 그의 동화는 왜곡된 세상을 적시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본원성에 대한 절대적 신뢰와 역동적인 삶의 이치를 풀어 간다. 또한 인간과 자연의 공존 추구, 더 나아가 생태적 사유를 적극적으로 개진한다. 이 책에는 <무화과 이야기>를 포함한 13편의 단편이 수록되었다.
지은이
1936년 경상북도 청도에서 태어났다. 1965년 가을에 첫 시집 ≪꽃밭≫을 김성도 선생의 추천으로 발간하고 문단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어 1966년부터 1968년까지 ≪새교실≫지에 동시 <익을 때까지는>, <꽃눈이 텄다>, <누나야>가 3회에 걸쳐 이원수 선생에 의해 추천 완료되었다. 197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연밥>으로 당선했다. 2013년 현재 ‘부산문예대학’을 경영하며 300여 명의 문인을 배출했다. 1985년 <하얀 꽃사슴>으로 대한민국문학상, 1995년 <팔랑이의 한가위>로 제5회 방정환 문학상 본상, 1997년 <무화과 이야기>로 제3회 한국아동문학상과 부산광역시 문화상, 평론 ≪80년대의 한국동화문학≫으로 한맥문학 대상을 받았다.
해설자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현대문학을 공부했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2년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 평론 부문에 <알리바바의 서사, 혹은 소설의 알리바이>가 당선되어 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시, 말의 부도(浮圖)≫, ≪위기의 시대와 글쓰기≫, ≪한국 현대소설의 숨결≫, ≪작품으로 읽는 북한문학의 변화와 전망≫, ≪한국 소설의 얼굴≫(전 18권) 등의 저서 및 공저를 출간했으며, 계간 ≪시와시학≫, ≪시에≫, ≪시와사람≫ 등의 문예지 편집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3년 현재는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다. 제10회 젊은 평론가상과 제17회 시와시학 평론상을 받았다.
차례
작가의 말
무화과 이야기
하얀 꽃사슴
몸빛
관유와 돌각시
해나라의 세금
애란과의 약속
내가 만난 초록사람
오리 여자
눈썹만 보이는 할배
그 봄날의 꽃귀신
흑띠
들쥐와의 전쟁
새를 사랑하는 사람
해설
정진채는
이성천은
책속으로
1.
“괴로움이여! 안녕.”
진주조개는 산호 가지에서 바위 위로, 바위 위에서 땅바닥으로 굴러떨어졌습니다.
번갯불이 번쩍하고, 그리고 콰앙! 그것으로 진주조개는 죽은 줄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목숨은 그렇게 쉽게 끝나는 게 아닌 모양이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모랫바닥 위에 자신이 나동그라져 있었습니다. 가슴 밑 부분이 따끔따끔 저려 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점점 맑아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가슴 밑에 입었던 생채기 부분에서, 말할 수 없으리만치 커다란 어떤 기쁨 같은 것이 치솟아 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기쁨은 바로 일곱 빛 진주의 광채가 되어 먼 이웃까지 화안하게 밝혔습니다.
<몸빛> 중에서
2.
“욕심이 있는 편인가요, 없는 편인가요?”
나는 쉽게 대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그 자체가 욕심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먹고 싶다, 마시고 싶다, 가지고 싶다, 되고 싶다…. 이 모두가 욕심하고 깊은 관계여서 망설여질 수밖에요. 그래 정직하게 대답하기로 마음을 다졌습니다.
“욕심이 있는 편입니다.”
내 대답을 들은 돌각시는,
“당신은 처음부터 잘못 찾아온 손님이었습니다. 당신이 나를 보자 ‘반갑습니다’라고 인사를 할 때 내 대답은 ‘천만에요’였던 것을 기억해 주세요. 그것이 보통 사람과 초록사람의 차이인 것 같군요. 편안히 가세요.”
하고 인사를 마치자 바위 속으로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습니다.
<내가 만난 초록사람> 중에서